인터뷰

안무가 송송희 인터뷰

조형빈(드라마투르기)
2022년 10월 18일 

조: 처음 작업을 시작하면서 출발점으로 삼았던 키워드는 무엇이었나?

송: 몇 가지 단어들이 있다. '오래된', '살아내다'와 같은 단어들이 그것들이다. 작년 필름 작업에서 오래되고 낡은 장소, 그리고 그곳에서 곧 사라져갈 것들을 탐색했던 것과 맞물려 올해 작업이 이어졌다. 이런 개념들과 이어지는 것으로, 집이라는 공간 역시도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시간이 축적된다고 보았다. 

조: '살아낸다'는 것은 '살아간다'와 어떻게 다른가?

송: '살아낸다'는 개념을 식물의 삶의 형태로부터 떠올렸다. 어떠한 외부 환경적 조건이 있을 때 그것을 감내하고 버티는, 생명력이 담긴 것을 의미한다. 일종의 처절함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처절함을 드러내고 이야기함으로써, 그것을 공유함으로써 관객들 역시도 각자가 가지고 있는 처절함을 연상하거나 기억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 관객 각자의 기억이 맞닿는 기회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조: 작업 초기에 이 개념들을 구체화하기 위해서 키워드를 꼽아보자는 이야기를 했었다. 식물이 가지고 있는 삶의 양태들, 그리고 공간을 채우고 거주하는 것으로써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어떠한 것들로 표출되고 있는지, 안무가 본인이 선택한 키워드들이 있었다. 그것들은 지금의 작업까지 어떻게 이어졌나?

송: 여러 가지 키워드들이 있었는데, 그때 꼽았던 몇 가지 장면들이 떠오른다. 대표적으로는 이 작품에서 이미지적으로 가장 커다란 줄기가 된 '철창살과 얽힌 나무' 같은 것이 있을 것이고, 또 지금 살고 있는 집 바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아파트 공사의 현장 같은 곳에서 포착한 이미지들이 있다. 그 전까지 타고 다니던 차를 팔고 도보 중심의 생활을 하게 되면서 그 이미지들이 내 안으로 들어왔다고 생각한다. 

송: 이 풍경들 안에서 집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고, '이주'라는 키워드가 만들어졌다. 초기에는 머무름, 정주와 같은 것들에 작업의 초점이 조금 더 맞추어져있었는데, 리서치를 진행하면서 작업 안에서의 관심사가 머무는 것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다른 곳으로 옮겨다니는 삶의 형태들로 확장이 되었다.

조: 작업을 시작하면서 본인이 어렸을 때부터 살았던 부여의 집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뿌리집>은 개념적인 측면에서는 공간과 거주에 대한 이야기지만, 구체적으로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서 부여의 옛날 집을 계속해서 소환한다. 그 공간은 작품 안에 어떻게 녹아들어갔나?

송: 내가 거주했던 곳, 내가 경험한 거주의 방식을 안무의 스코어로 만들 수 있을지 궁금했다. 작년과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는 영상 작업 역시도 그렇지만, 기록이라는 것 자체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안무 작업 안에서도 건축적인 구조나 공간의 배치, 구성과 같은 것들이 일종의 기록으로, 하나의 스코어로 작동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송: 그리고 집이라는 공간이 누구에게, 어떤 공간일까 역시도 궁금했다. 내가 어렸을 때 살던 집에는 부모님을 포함한 여러 가족 구성원이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하나의 공간을 어떻게 나누고 그 안에서 어떤 관계들이 발생했는지 들여다보고 싶었다. 이 관심사는 작품 안에서 위와 아래로 나뉘어진 공간 안에서 무용수들이 만들어내는 움직임으로 구현되었는데, 여기에는 다양한 맥락들이 중첩되어 담겨있다. 여성의 공간과 남성의 공간이 각각 어떻게 다른지, 각각의 구성원들은 어떤 몸짓을 통해 그 공간을 점유하는지, 또 어떤 공간을 위와 아래로 나눈다는 것은 무엇을 함의하고 실제로 그것들이 연결되는 방식은 무엇인지 등 여러 가지 것들을 고민해보고자 했다. 

조: 작업 초기에 논의되었던 키워드들 중에서 작품까지 이어진 것들 중에 '흔들리는 추의 운동성' 같은 것도 있다. 반복적으로 흔들리는 추의 운동성이 외부에서 들어오는 어떤 것을 막아내거나 그것을 극복하게 만드는 작동 기제가 된다고 한다면, 그것은 안무가 본인의 몸과 어떻게 만났는가?

송: 나는 여러 가지 이미지들을 수집해왔는데, 그 중에서 특정한 형상들을 따로 분류해낼 수 있을 것 같다. 늙은 노인들의 등, 불구, 혹은 뒤틀린 신체로 간주되지만 실제로는 어떤 방식으로든 편안해진 모습들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 형상들은 변형된 형태지만, 이 반복된 움직임들을 빠르게 혹은 느리게 조율하면 하나의 안무로 구성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몸에 대해 항상 곱고, 바르고, 대칭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외부의 힘, 혹은 어떤 원인에 의해 기울어지거나 불균형해지는 몸들이 반드시 존재한다. 나 역시도 같은 맥락에서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 개인적인 기억을 토대로 그 결핍들에 저항하거나 '살아내는' 방식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것이 이미지적으로 구체화된 소재가 '식물'들이다. 

조: 작품의 제목에서부터 식물, 그리고 공간이라는 컨셉이 강하게 드러난다. 관심 가지고 있는 삶의 양태들을 공간에 접목시키고자 한 이유는 무엇인가?

송: 거주지를 서울로 옮기고 계속 이사를 하면서, 공간 혹은 건축 그 자체에 관심이 생겼다. 춤은 움직임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도 남아있지 않지만, 건축은 그것이 구현화된 결과물로서 그 자리에 남아있다. 건축은 그 안에 머무는 몸을 해석한다. 건축이 만들어내는 디자인을 보면 그 안에서 음악적인 리듬이나 동세 같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일종의 종합적인 예술로서 건축이 춤과 맞닿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작업에서는 이런 고민들을 풀어보고 싶었다. 일본의 건축가 구마 겐고는 <점・선・면>에서 '약한 건축'을 이야기한다. 시멘트나 콘크리트 같은 단단한 것들이 아니라, 나무나 패브릭, 사소한 것들을 가지고 힘을 만들어내는 건축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부분이 내가 안무 안에서, 공간 안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컨셉과 맞닿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 이런 개념들을 작업까지 끌고 오기 위해 다양한 리서치를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경로를 통해 발전되어왔는지 이야기해달라.

송: 초기에 공간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과정에서 '안정과 불안정'에 대해 탐구했었다. 집이 가지고 있는 공간적 특성 중 가장 큰 것은 몸이 담겨있는 상황 안에서 '안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불안정'은 이것과 대조적으로 어떤 특성을 내보이는지 실험했다. 이 대조는 운동성으로 표현되기도 했고 구조, 위치와 같은 물적 특성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수평과 수직'에 대한 고민도 있었는데, 이 개념들에 대한 리서치가 결국 '거주'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로 이어졌다. 거주를 존재가 공간 안에서 적응하는 방식이라고 정의할 때, 결국 거주는 끊임없이 새로운 방식의 안정을 찾아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식물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계속해서 불안정한 환경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데, 그 안에서 개별적인 존재들이 안정의 방식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흥미로웠고 그것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송: 공연 홍보 이미지에 들어가 있는 '철창살에 얽힌 나무'의 경우, 제약이나 고난의 환경에서 살고 있는 식물의 모습을 아주 흥미로운 형태로 보여준다. 이전 작업에서도 나무에 대한 이야기들을 해왔었지만, 식물이 가지고 있는 존재로서의 고독에 자주 끌리곤 한다. 식물은 춤이라는 매체 안에서 소재로 삼기에는 움직임, 혹은 운동성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 식물 고유의 특성들이 존재한다. 어떤 식물들의 경우 씨를 퍼뜨리기 위해 포식자에게 열매를 먹힌 다음 그 포식자가 뱃속에 소화되지 않는 씨를 가지고 다른 곳에 가서 그것을 배설하는 방식을 취한다거나, 물가에 사는 어떤 식물의 경우 열매를 아주 무겁게 만들어서 그것을 물에 떨어뜨려 멀리 흘려보내는 방식으로 번식한다. 이것이 식물에게 있어서는 이동과 운동이다.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는 움직임인 셈이다. 

송: 공간의 측면으로 바라본다면, 식물에게 집은 즉 자신의 몸이다. 식물에게 있어서 공간의 안과 밖은 껍질을 경계로 하는 줄기의 내부와 외부일 수도 있지만, 땅을 기준으로 뿌리박혀있는 아랫부분과 흙 위로 노출되어 있는 윗부분으로 구분할 수도 있다. 나는 이들의 연계성, 안과 밖이 어떻게 연결되고 그 안에서 에너지의 흐름이 어떤 운동성을 구축하는지가 흥미로웠다. 반드시 물리적으로 눈 앞에서 움직임이 일어나야 거기에 운동성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멈춰있고 정지되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야만 포착할 수 있는 에너지들 역시도 운동성을 구성할 수 있다. 그것이 어쩌면 나의 삶의 모토와도 맞물려있다고 할 수 있겠다.

조: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씬들 안에서 지속적으로 발견되는 것이 관계성이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과정에서 누가 그것을 열어주고 거기에서 어떤 관계가 발생되는지, 또 분리된 공간 안에서 각각의 존재가 물리적인 것을 넘어서서 어떻게 은유로 연결되는지, 다양한 포습으로 관계성의 모습이 포착된다. 

송: 극장에 배치되어있는 한 구조물에서는 공간을 위와 아래로 나누었다. 아래를 '안'이라고 규정한다면, 위를 '바깥'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를 만들고 싶었다. 여기에 어떤 관계성을 발생시킨다면, 한 쪽의 존재가 다른 쪽의 삶을 유지시킬 수 있는 근거가 되도록 보이게 만들수 있을 것 같았다. 식물의 몸은 그 안에서 모두 연결되어 있고, 한쪽에서 만들어낸 양분이나 에너지를 다른 쪽으로 흘려보낸다. 이 주고 받음이 움직임으로써 씬을 구성하도록 만들고 싶었다.

송: 식물이 관계맺는 방식, 거주하는 방식에는 적응과 저항의 과정이 반드시 포함된다. 무용수들이 좁은 공간을 통과하는 부분도, 길가의 보도블럭들 사이 틈을 비집고 나온 식물의 모습이 거주의 한 방식을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만들게 되었다. 사람 역시도 사는 공간이 좁다면 그 좁은 공간에 맞추어 자신의 삶을 변형시킨다. 이 제약들, 공간에 대한 감각들이 실제로 나의 몸을 변화시키는 방식에, 철창을 뚫고 나오는 식물의 모습을 연결시킬 수 있었다. 

조: 다양한 에너지의 흐름, 그리고 <뿌리집>이라는 데에서 유추되는 감각들이 있는 것 같다. 관객들이 이 <뿌리집>의 이야기를 통해 받아갈 수 있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송: 우리가 안정감을 느끼는 집 역시도 하나의 공간이라고 할 때, 여기서 중요해지는 것은 내가 공간과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다. 누구나 공간에 존재하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가 되는지 알기 위해서는 공간을 더 세밀하게 감각해봐야 한다. 이번 작업을 하는 동안 나 역시도 공간에 대한 많은 질문을 갖게 되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현실에서 이 다음에 내가 머무를 공간은 어디인지, 내 몸이라는 '공간'은 어떤 안무를 품을 수 있는 몸인지. <뿌리집>을 본 관객들이 작품을 통해 이러한 질문과 감각들을 느끼고 공유할 수 있었으면 한다.